월간국립극장
Monthly National
Theater of Korea

영국 공연예술의 심장

영국 내셔널시어터 〈인터 알리아〉

At the Heart of British Performing Arts — National Theatre's Inter Alia

Published November 2025
Publication 월간국립극장 — Monthly National Theatre of Korea
Author 정효정 (Hyojung Jung) — Artistic Director, Nangman Theatre
Photography Manuel Harlan (National Theatre) · Hyojung Jung
월간국립극장 · November 2025
영국 공연예술의 심장 — 〈인터 알리아〉

▲ 〈인터 알리아〉 공연 장면 — 출처: Manuel Harlan (National Theatre)

영국 내셔널시어터는 런던 사우스뱅크, 템스강을 마주보는 요지에 자리한다. 바로 옆에는 영국영화협회(BFI)가 있고, 런던아이, 사우스뱅크센터, 테이트모던 등 주요 문화 명소가 밀집해 관광객과 시민 모두에게 친숙하다. 내셔널시어터는 1963년 로런스 올리비에가 창립했고, 1976년 올리비에극장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개관했다. 건축가 데니스 라스던이 설계한 브루탈리즘 양식의 대표작으로, 영국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극장 내부는 세 개의 주요 공연장으로 구성된다. 올리비에극장(약 1,160석), 리틀턴극장(약 890석), 도프먼극장(약 400석)으로 대형 스펙터클부터 실험적 소극장 공연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 내셔널시어터는 일상과 예술이 맞닿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며, 영국을 대표할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현대의 모성과 남성성을 정면으로 응시한 뜨거운 신작

〈인터 알리아〉는 2025년 7월 23일 개막해 9월 13일까지 리틀턴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프리마 파시〉의 성공으로 주목받은 극작가 수지 밀러와 연출가 저스틴 마틴의 신작으로 주인공 제시카 역에는 세계적인 배우 로저먼드 파이크가 캐스팅되어 내셔널시어터 데뷔 무대를 장식했다. 평균 100파운드 내외의 다소 높은 티켓 가격에도 초연부터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고, 올해 웨스트엔드 재공연이 확정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입증했다. 9월 4일부터 'NT Live'를 통해 일부 국가의 시네마 상영으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내셔널시어터 로비

▲ 영국 내셔널시어터 로비 — 출처: Hyojung Jung

〈인터 알리아〉 공연 장면

▲ 〈인터 알리아〉 공연 장면 — 출처: Manuel Harlan (National Theatre)

Inter Alia는 라틴어로 'among other things(그 밖의 여러 것들 가운데)'라는 법률용어다. 작품 안에서는 '판사'라는 직업적 정체성 이외에도 아내, 엄마, 동료, 친구 등 여러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감당하는 현대 여성의 삶을 상징한다. 또한 이 극의 주요 배경이 되는 사법 시스템은 오래도록 남성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였다. 여성 법조인의 진입은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본격화되었고, 오늘날에도 영국·웨일스 사법부의 여성 판사 비율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해당 연극은 이런 제도적 토대 위에서 여성 판사가 권위를 '획득'해야만 하는 현실과 내적 부담을 응시한다.

정의와 모성, 그리고 '심판'과 '심판받음'의 이중성

〈인터 알리아〉 첫 장면 — 로저먼드 파이크

▲ 〈인터 알리아〉 첫 장면 — 출처: Manuel Harlan (National Theatre)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아들은 드럼을, 남편은 기타를 연주하고, 제시카는 영국 판사의 전통 복장을 무대적으로 재해석한 의상을 입고 로커처럼 마이크를 쥐고 리프트에 올라 등장한다. 권위의 이미지와 록 퍼포먼스의 충돌이 관객에게 강한 첫인상을 남긴다. 무대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가정을 상징한다. 세밀하게 꾸며진 집은 우주선 모듈 혹은 파스텔 톤 캡슐처럼 보여 전체적으로 인공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시카가 엄마이자 아내의 자리로 돌아올 때, 뒤편 세트가 전진해 집의 형태를 만드는데 마치 우주선이 도킹하듯 다시 결합되어 균형의 회복과 위태로움을 동시에 암시한다. 아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순간, 집은 왼쪽·오른쪽·상부 세 조각으로 갈라져 그간 완벽하게 유지된 삶이 산산이 조각나는 제시카의 심리를 시각화한다.

작품의 핵심은 정의와 모성의 충돌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늘 피해 여성의 편에 서던 판사 제시카는, 가해자의 엄마로서 자신의 아들을 마주한다. 그는 법을 이용해 아들의 죄를 덜어 주고자 하지만, 아들은 죄책감 속에서 자수를 선택하고 집을 떠난다. 이때 무대 뒤편의 놀이터가 전면으로 이동하며, 제시카는 아이를 잃어버렸던 과거의 기억으로 회귀한다. 이번에는 정말로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극대화된다.

여기서 작가인 수지 밀러가 강조한 지점이 선명해진다. 제시카는 타인을 '심판'하는 판사이면서 동시에 사회·가정·자기 자신에게 '심판받는' 존재다. 법정의 냉정한 목소리와 집에서의 내밀한 목소리가 겹겹이 공존하고, 작품은 그 내부의 균열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드러낸다.

무대적 모티프와 동시대성

작품을 관통하는 모티프는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초반에 반복 등장하는 작은 노란색 파카는 인형극처럼 활용되며, 끊임없는 불안과 상실을 상징한다. 실제 아역배우는 후반부에야 등장하고, 그전까지는 마임과 그림자극이 아이의 존재를 대신한다. 엄마는 아이가 어릴 때는 길을 잃을까(물리적 실종), 청소년이 되면 나쁜 일로 무너질까(도덕적·사회적 붕괴) 두려워한다. 작품은 이처럼 다양한 결의 '잃어버림'의 불안이 드리운 그림자를 선명하게 포착한다.

한편 작품은 오늘의 현실과도 공명한다. 영국·웨일스 청소년 사법 통계(2023–2024)에 따르면, 법원 형사처분 아동은 약 1만 2천여 명(전년 대비 8% 증가), 첫 유입자의 84퍼센트가 소년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청소년 성범죄는 약 47퍼센트 증가했다. 이러한 수치는 작품이 겨냥하는 부모·자녀·사회현상의 이야기가 결코 추상이 아님을 뒷받침하며, 연극은 동시대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극 중 이 대사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자식을 알지 못한다."

사진 출처

Manuel Harlan (National Theatre) · Hyojung Jung

『월간국립극장』 2025년 11월호 — 세계무대 (pp. 5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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